한성백제박물관,“푸른빛의 예술, 백자에 수놓이다!”

- 12월 말까지 도서관 등 공공 기관 배부 및 온라인 열람 추진

 

□ 한성백제박물관(관장 유병하)은 2014년부터 소장품목록의 발간을 통하여 박물관의 대표적인 소장품을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 발간하는 11번째 소장품목록은, 이상윤 교수가 기증한 중국 청화백자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이를 통해 박물관의 다양한 소장품을 전시 및 교육에 활용하는 기반을 조성하고 한⋅중 도자 교류사 연구에 기여하고자 한다.

 

□ 본 목록은 중국 청화백자 380점을 선별하여 기능, 형태, 문양 별로 분류한 후, 도자기 이해에 가장 도움이 되는 각도의 사진 이미지와 필수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편집하였으며, 일반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청화백자의 의미와 발전 과정을 정리하여 수록하였다.

 

 

□ 청화백자는 붓을 사용하여 자유롭게 문양을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백자의 하얀 바탕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푸른색의 코발트 그림은 보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붓은 다른 그림도구와 비교하여 문양을 표현하는데 무척 자유롭다. 이는 이상윤 기증 청화백자에 보이는 길상문, 문자문, 동물문, 식물문, 인물고사도(人物古事圖) 등 매우 다양한 문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 이상윤 기증 청화백자는 주로 중국의 명(明)⋅청(淸) 시기에 제작되었으며 접시, 대접, 항아리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릇에 그려진 문양의 배치⋅구성이 변화무쌍하며 인간의 장수를 기원하는 ‘수(壽)’자 문양도 눈에 띤다. 의자, 베개, 수저 등 특수한 형태의 청화백자를 통해, 당시 도자기의 제작기술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 박물관에서는 본 목록을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 무상으로 보급하고 있다. 12월 말까지 서울도서관 및 한성백제박물관 누리집에서 열람이 가능하고, 서울책방(서울시청 지하1층) 또는 한성백제박물관 ‘뮤지엄샵’(올림픽공원 안)에서 도서를 판매할 예정이다.(판매가격 10,000원)

 

※ 온라인을 통한 도서 내용 열람 방법(12월 말 예정)

- 서울도서관 누리집(https://lib.seoul.go.kr/)

- 한성백제박물관 누리집(https://baekjemuseum.seoul.go.kr)에서

자료실 ⇨ 박물관간행물 ⇨ 학술서적 클릭

※ 도서 구매 방법(12월 말 예정)

- 서울책방(https://store.seoul.go.kr, 02-739-7033): 현장 또는 온라인 구매

- 한성백제박물관 뮤지엄샵(02-413-0888): 현장 구매

 

 

청화백자의 시작과 발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청화백자(靑花白瓷)는 한국인에게도 친숙하다. 새하얀 바탕 위에 푸른빛을 띠는 코발트 안료로 각종 문양을 꾸민 것이 특징이다. 이슬람 지역 도기(陶器)에서 영향을 받아, 붓으로 기본 문양을 그리고 투명유(透明釉)를 씌워 약 1,300의 고온에서 구워 만든다. 중국의 백자 제작기술과 이슬람의 원료와 양식이 합쳐져 나타난 것이 청화백자라고 할 수 있다.

 

청화백자의 시작을 중국 당대(唐代)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원대(元代)에 확립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원대의 청화백자는 당시 주요 수출품으로서 육로와 해로를 통해 서남아시아까지 수출되었다. 이후 청대(淸代)에 오채(五彩), 투채(鬪彩), 법랑채(琺瑯彩) 등 다양한 채색자기가 유행하기 전까지 주변국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중국 강서성(江西省)에 있는 경덕진요(景德鎭窯)는 가장 대표적인 청화백자 생산가마로, 원대에 해당하는 1278년에 그릇 생산의 행정 관리기구인 부량자국(浮梁磁局)’이 설치되면서 체계적으로 관리되었으며, 14세기부터 큰 발전을 이루었다.

 

원대의 청화백자는 대부분은 동남아시아와 이슬람 지역으로 수출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따라서 수요지역의 문화를 반영하여 지름이 40~60cm에 이르는 대형 그릇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모란ㆍ연꽃과 같은 식물무늬를 흔히 볼 수 있고, ()길상(吉祥)고사(古事)를 그린 무늬가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죽림칠현(竹林七賢), 삼국연의(三國演義), 십팔학사(十八學士) 등 옛 중국 역사 속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수많은 고사(古事) 문양은 보는 이의 주목을 끈다.

 

명대(明代)에 들어와서 경덕진에 황실 그릇만을 만드는 어기창(御器廠)이 설립되면서 당시 최고의 장인들이 최상의 자기를 생산하였다. 새로운 기형이 제작되었고 수입산 코발트 안료인 소마리청(蘇麻離靑)을 사용하였다.

 

청대(淸代)는 사회와 경제의 안정, 황실의 지원, 어기창의 회복, 수출 자기의 생산 등으로 자기 생산이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강희(康熙)옹정(雍正)건륭(乾隆) 시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강희제의 재위기간이 길었던 만큼 청화백자가 끊임없이 발전하여 기형과 문양의 소재가 풍부하였다. 옹정 시기는 청대 자기가 가장 완벽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건륭 시기에는 황제의 애호와 궁정의 수요가 증가하여 관요 자기가 크게 발전하였다.

 

청화백자 주요연표

 

8세기: 서아시아에서 초기 양식의 청화백자를 만들기 시작하다.

14세기 초반: 중국 원나라에서 청화백자를 만들기 시작하다. 이후 청화백자와 그 제작기술이 주변 여러 나라에 전해지다.

14세기 후반: 베트남에서 청화백자를 만들기 시작하다.

1448: 중국 명나라에서 청화백자의 무역을 금하다.

15세기 중엽: 베트남에서 청화백자가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동남아시아, 일본, 이집트 등에 수출되기 시작하다.

1463~1469: 조선의 전라도ㆍ경상도에서 회회청(回回靑) 및 유사 광물을 구하여 청화백자를 제작하다.

1793~1795년 조선에서 자기의 제작에 청화 안료의 사용을 금하다.